독립운동가 황기환(黃玘煥, 1886~1923)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에서 드물게 1차 세계대전 미군 복무 경력과 유럽 외교전을 결합해 활동한, 대표적인 해외 독립외교가입니다.wikipedia+2
생애와 경력
황기환은 1886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났으며, 청년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자로 생활하다가 1918년 미군에 자원입대해 1차 세계대전 유럽전선에 참전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유럽에 남아 파리로 거점을 옮겼고, 이 경험과 영어 구사 능력, 미군 복무 경력은 이후 독립외교 활동의 강력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는 1923년 심장병으로 37세의 젊은 나이에 서거한 뒤 뉴욕의 한 묘지에 오랫동안 안장돼 있다가, 순국 100주년을 전후해 유해 봉환이 추진·성사되는 등 뒤늦게 재조명되었습니다.[youtube]kkum.prkorea+1
파리강화회의와 유럽 독립외교
1919년 3·1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이후, 임시정부는 파리강화회의를 계기로 한국 문제를 국제사회 의제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황기환은 파리에 온 김규식을 도와 평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 준비와 각종 선전·실무를 담당했고,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으로 활동하며 한국 독립의 정당성과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유럽 여론에 알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지리학회 등의 강연에서 “독립을 이룰 때까지 일본에 맞서 싸우겠다”는 취지로 발언하며, 극동의 평화가 한·중에 가해지는 압박과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namu+4
황기환은 프랑스어·영어로 잡지 「자유한국」을 창간해 한국의 독립을 세계 여러 나라에 호소했고, 프랑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이 요구하는 것은 일본이 말하는 자치나 개혁이 아니라, 일본 행정의 철수와 강탈 권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양”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이처럼 그는 군사투쟁이 아닌 여론전·외교전을 통해, 한국 문제를 국제정치의 의제로 끌어올리려는 전략적 접근을 수행했습니다.encykorea.aks+3
런던 활동과 ‘대영제국한국친우회’
1920년대 초 황기환은 임시정부로부터 런던위원부 위원, 주차영국런던위원으로 임명되어 활동 무대를 영국으로 넓혔습니다. 그는 영국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국 독립 문제를 제기하고, 영일동맹 갱신을 견제하기 위해 ‘영일동맹과 한국’이라는 소책자를 준비·편찬해, 한국의 식민지화가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분할 정책의 산물이라는 점을 비판했습니다. 더 나아가 영국의 국회의원 17명을 포함한 62명으로 구성된 ‘대영제국한국친우회’를 결성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며,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친한 네트워크를 조직했습니다.knamf+2
1921년에는 대영제국 식민지수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수상에게 ‘일본의 통치를 벗어나고자 하는 조선 사람의 청원’을 배포하고, 같은 문서를 도쿄 주재 일본대사 하야시 곤스케에게도 보내는 등 일본과의 직접적인 외교적 공방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편지와 소책자, 청원서를 통해 영국 내에서 한국 문제를 지속적으로 환기하며, 식민지배 종식과 독립을 국제질서 논의와 연결짓는 데 주력했습니다.kkum.prkorea+2
인도주의 활동과 이후 평가
황기환은 외교·선전 활동뿐 아니라 러시아 지역 한인들의 생존 문제에도 개입했습니다. 일본에 의해 강제 송환될 위기에 놓인 한인들을 위해 영국 정부와 협상해 일부를 프랑스로 이주시켰고, 이들은 1차 대전 격전지 베르됭 등에서 노동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독립운동가로서의 외교력과 더불어, 실질적인 구호 활동을 겸한 사례로 기록됩니다.[blog.naver][youtube]
해방 이후 한동안 그의 공적은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95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며 공식 공훈이 인정되었습니다. 이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의 모티브 중 한 명으로 언급되면서 대중적 재조명이 이뤄졌고, 파리·런던·뉴욕 등지에 남은 행적과 자료가 발굴되면서 “유럽전선의 유진 초이”, “대서양을 누빈 독립외교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naver+2youtube+1
역사적으로 보면 황기환은 무장투쟁의 영웅이라기보다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세계사적 변동을 활용해 상징자본(미군 참전, 영어·불어 능력)과 국제회의를 발판으로 삼은 초기 ‘글로벌 로비스트형’ 독립운동가라는 점에서, 한국 독립운동사의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encykorea.ak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