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로마 제국

신성 로마 제국은 10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중앙·서유럽에 존재했던 기독교 군주 연합체로, 형식상 고대 로마 제국의 계승을 자처한 다민족 제국이다.wikipedia+1

성격과 영토

신성 로마 제국은 오늘날 의미의 중앙집권적 국가라기보다 수백 개의 왕국, 공국, 주교령, 자유도시 등이 느슨하게 결합한 정치적 연합체였다. 제국의 중심은 독일 지역이었고, 시기에 따라 현재의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북이탈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동부·서부 일부 등 중부 유럽 전역을 포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프랑스·이탈리아 등 주변 지역이 이탈해, 근세 이후에는 주로 독일어권 중심 체제로 수축되었다.worldhistory+3

기원과 ‘신성·로마’라는 이름

기원은 보통 962년 동프랑크 왕 오토 1세가 교황 요한 12세에게서 황제관을 쓰고 로마 황제 칭호를 부여받은 시점으로 본다. 이때부터 프랑크·독일 왕권이 서로마 제국의 정통한 계승자라는 ‘제국의 이전(Translatio imperii)’ 이념이 공식화되었다. ‘신성’(sacrum)이라는 수식은 1157년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가 자신이 이끄는 제국을 교황권과 대등한 신성한 질서의 축으로 내세우기 위해 처음 국호에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16세기에 이르면 공식 국호는 ‘독일 민족의 신성 로마 제국(Sacrum Imperium Romanum Nationis Germanicae)’으로 정착했다.namu+4

정치 구조와 황제의 권위

신성 로마 황제는 형식상 유럽 가톨릭 세계의 최고 세속 군주이자 로마 제국의 계승자로 간주되었지만, 실제 권한은 제후들의 동의에 크게 의존했다. 황제는 세습이 아니라 선제후(선거권을 가진 몇몇 유력 제후)의 선거로 선출되었고, 대관식에서 교황의 인준을 받는 것이 이상적 절차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제국 정치의 핵심은 황제권과 제후권, 그리고 교황권 사이의 미묘한 힘의 균형이었고, 황제권이 강했던 시기(슈타우펜 왕조, 초기 합스부르크)와 극히 약화된 시기가 반복되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루터파·칼뱅파 제후들이 등장하면서 황제의 가톨릭적 통합 권위가 더 약화되었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은 각 제후국의 주권을 사실상 국제적으로 승인했다.wikipedia+2

역사 전개와 해체

중세 초·중기 제국은 이탈리아와 로마 교황청을 둘러싼 이탈리아 원정, 서임권 투쟁 등으로 교황권과 빈번히 충돌하면서도, 십자군과 교회 질서 유지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15세기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이 황제위를 사실상 장기 세습하면서 제국은 오스트리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한때 스페인·보헤미아·헝가리 등과 결합해 유럽 최강의 왕조 블록을 형성했다. 그러나 30년 전쟁과 프랑스·프로이센의 부상으로 제국의 실질적 통합력은 크게 약화되어, 18세기에는 이름뿐인 상징적 연합체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결정타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1806년 나폴레옹이 주도한 라인동맹 결성과 해체 압박 속에서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가 황제위를 내려놓고 제국의 해체를 선언함으로써 약 800여 년의 역사가 끝났다.namu+4

사후 평가와 의미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신성 로마 제국이 “신성하지도, 로마적이지도, 제국도 아니다”라고 비꼬았을 만큼, 근대인의 눈에는 비효율적이고 파편화된 체제로 보였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 제국은 중부 유럽에서 공통의 법질서와 외교적 틀을 제공하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 등 여러 지역의 정치·법문화 형성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동시에 교황권과 황제권 사이의 긴장은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의 분리, 그리고 근대적 주권 개념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유럽 정치사 핵심 주제 중 하나로 평가된다.atlasnews+3[youtube]​